아버지 무덤 함께 삽질하다 풀린 이복형제의 묵은 오해와 원망들 [OTT 리뷰]

입력 2023-05-25 17:40   수정 2023-05-26 00:46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다. 대체로 둘 사이의 갈등과 상처를 그린다. 그래야 현실적이니까. 접근 방식도 대체로 비슷하다. 서로의 면전에서 치열하게 다투고 울며불며 갈등을 고조시킨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애플TV플러스의 영화 ‘레이먼드 & 레이’는 다르다. 아버지와 아들들의 갈등을 다루지만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영화는 죽은 아버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얽히고설킨 오해와 원망의 실타래를 고인의 묘지에서 풀어낸다.

가정폭력 트라우마 극복기의 매력에는 화려한 출연진이 한몫한다. 에단 호크와 이완 맥그리거가 각각 이복형제 레이와 레이먼드를 연기했다. 연출은 영화 ‘세레나’ ‘광야의 40일’ 등을 제작한 로드리고 가르시아 감독이 맡았다.

영화는 레이먼드(이완 맥그리거 분)가 수년 만에 이복형 레이(에단 호크 분)의 집을 찾아오며 시작된다. 레이먼드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형 레이에게 전한다. 레이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듣고도 슬퍼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담담한 표정으로 아버지가 자살했는지 묻는다. 사연이 많은 가족의 인상을 단번에 알려주는 오프닝이다.

레이는 이복동생이 직접 찾아와 부고를 하는데도 장례식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 동생의 설득에 결국 이복형제는 고향으로 간다. 아버지의 유언은 고약했다. 그는 자신의 묫자리를 아들들에게 직접 파달라고 했다. 형제는 어쩔 수 없이 하루 종일 삽을 들고 무덤을 판다.

삽질하는 동안 가족의 겪은 숨은 사연이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아버지의 폭력적인 언사와 여성 편력 등으로 인해 상처받은 이야기들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듣도 보도 못한 이복형제들이 더 튀어나온다. 게다가 한둘이 아니다. 이 생면부지의 이복형제들도 레이먼드, 레이와 함께 무덤을 판다.

영화는 부자간의 갈등과 트라우마, 아버지의 죽음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무겁지 않다. 두 형제의 대화엔 각종 미국식 농담이 섞여 있다. 갑자기 나타난 다른 이복형제들이 곡예를 선보이는 장면 등에선 웃음마저 터져 나온다.

그러면서 영화는 형제들의 곪은 상처를 터뜨리고 극복하는 과정을 강렬하게 담아냈다. 단연 압권은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레이먼드와 레이 각자가 보여주는 돌발 행동들이다. 레이먼드는 총을, 레이는 트럼펫을 꺼내든다. 총과 트럼펫으로 무엇을 했을까. 영화는 돌발 행동에 담긴 숨은 의미를 전후로 잘 풀어가며 더욱 설득력을 높인다.

두 배우의 호흡도 뛰어나다. 실제 형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할 만큼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호크의 트럼펫 연주를 다시 볼 수 있어 반갑다. 그는 영화 ‘본 투 비 블루’에서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를 연기해 호평받았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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